가룟유다의 죽음과 피밭의 내력(사도행전 1장 19절)

예수를 배신한 가룟유다의 죽음 전후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필자는 이미 몇편의 글을 포스팅했다.

가룟유다의 죽음 예수 죄인 만들기 공범 - 요한복음 사도행전 예수는 죄인 요한복음 13장 18절

필자가 부정적으로 보든 긍정적이든, 쓰여져 있는 기독교성경의 글 그건 여전히 변함없다. 진리가 왜 무서운가, 진흙 속에서도 빛을 잃지않고 반짝이기 때문이다.

가룟유다가 받은 은 삼십, 자금흐름 불투명

이번엔 마태복음 26장 15절, 가룟유다가 받은 은 삼십, 자금흐름 불투명 하다는 의심이 든다. 사도행전 기록과 서로 다름에서 기인한다.

3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4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5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6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가로되 이것은 피 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7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8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마태복음 27장
18(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19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게 되어 본방언에 그 밭을 이르되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사도행전 1장
회개한 가룟유다가 대제사장들에게 은 삼십을 전액 환불(리펀,refund)해 줬고, 그 돈으로 "대제사장들이" 땅 샀다고 분명하게 전한다. 그 땅 이름은 피밭 - Field of Blood 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가룟유다가 부정한 돈(은 삼십)으로 밭을 샀다 그 후 죽었다고 전한다. 밭을 샀으니 토지대금은 은 삼십 혹은 일부를 사용해서라도 결제했을 터이니 제사장들에게 전액 환불해 줬을 가능성이 희박하다.

피밭(아겔다마, Field of Blood)의 매입 당사자가 마태복음은 가룟유다가 환불해준 돈으로 제사장들이 샀다, 사도행전은 토지매입대금의 성격을 말하지 않은 채 가룟유다가 그냥 샀다, 서로 다르다.

가장 확실한 증언은, "누구로 부터 얼마를 받고 땅 넘겼는가" 땅을 판 사람에 대한 취재가 있었더라면 좋았을 걸... 저자들이 좀 게을렀나, 말이 없다, 자금흐름이 좀 구리다.

마태복음과 사도행전 두 저자는, 가룟유다의 죽음과 피밭의 내력(사도행전 1장 19절) 사이에 분명한 차이를 들어낸다.

교회가 거짖말을 해야하는 이유 - 허접 교리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우리 속담처럼, 이렇게 사소한 이벤트일지라도 상반되거나 전혀 엉뚱한 진술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은 기독교 교리 자체를 무너뜨리고 만다.

일반 백성 문맹율이 90%를 넘던 지난 천 수백여년 동안, 성경이 로마카돌릭 성당 사제들의 독점 전유물이었던 시절, 그런 사소한 에러들이 강대상 아래 성도 우리들에게 그 때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한대의 컴퓨터에 연결된 두대의 와이드 모니터를 통해 웹브라우저에 여러개의 기독교성경과 히브리성경을 동시에 띄워놓고 읽는 이 시대, 하나의 사건 기록에 대해 문자로 읽어 서로 다름과 틀림을, 필자같은 필부도 힘들이지 않고 드러낼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바닷가 모래사장, 모래 알갱이 하나하나는 우리의 주목을 끌지 못한다. 그러나 그 위에 지은 집이 쓰러졌을 때 모래 알갱이를 주목하게 마련이다.

모래 알갱이 같은 사소한 에러(error) 위에 세워진 기독교 교리, 그걸 디디고 서 있는 교회당, 반드시 무너져 내려 사라질 예정이다.

교회의 붕괴 소멸 과정이 이미 시작되어 상당히 진척되었음이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마치 암세포 자라나듯, Like a cancer grows.

교회의 쇠퇴는 영성때문이다, 목사때문이다, 물질만능주의 팽배이다 등등 여러 다양한 이유를 들고 나온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교회가 거짖말을 해야하는 이유 - 허접 교리 - 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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