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룟유다의 죽음과 피밭의 내력(사도행전 1장 19절)
예수를 배신한 가룟유다의 죽음 전후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필자는 이미 몇편의 글을 포스팅했다.
필자가 부정적으로 보든 긍정적이든, 쓰여져 있는 기독교성경의 글 그건 여전히 변함없다. 진리가 왜 무서운가, 진흙 속에서도 빛을 잃지않고 반짝이기 때문이다.
가룟유다가 받은 은 삼십, 자금흐름 불투명
이번엔 마태복음 26장 15절, 가룟유다가 받은 은 삼십, 자금흐름 불투명 하다는 의심이 든다. 사도행전 기록과 서로 다름에서 기인한다.
피밭(아겔다마, Field of Blood)의 매입 당사자가 마태복음은 가룟유다가 환불해준 돈으로 제사장들이 샀다, 사도행전은 토지매입대금의 성격을 말하지 않은 채 가룟유다가 그냥 샀다, 서로 다르다.
가장 확실한 증언은, "누구로 부터 얼마를 받고 땅 넘겼는가" 땅을 판 사람에 대한 취재가 있었더라면 좋았을 걸... 저자들이 좀 게을렀나, 말이 없다, 자금흐름이 좀 구리다.
마태복음과 사도행전 두 저자는, 가룟유다의 죽음과 피밭의 내력(사도행전 1장 19절) 사이에 분명한 차이를 들어낸다.
교회가 거짖말을 해야하는 이유 - 허접 교리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우리 속담처럼, 이렇게 사소한 이벤트일지라도 상반되거나 전혀 엉뚱한 진술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은 기독교 교리 자체를 무너뜨리고 만다.
일반 백성 문맹율이 90%를 넘던 지난 천 수백여년 동안, 성경이 로마카돌릭 성당 사제들의 독점 전유물이었던 시절, 그런 사소한 에러들이 강대상 아래 성도 우리들에게 그 때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한대의 컴퓨터에 연결된 두대의 와이드 모니터를 통해 웹브라우저에 여러개의 기독교성경과 히브리성경을 동시에 띄워놓고 읽는 이 시대, 하나의 사건 기록에 대해 문자로 읽어 서로 다름과 틀림을, 필자같은 필부도 힘들이지 않고 드러낼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바닷가 모래사장, 모래 알갱이 하나하나는 우리의 주목을 끌지 못한다. 그러나 그 위에 지은 집이 쓰러졌을 때 모래 알갱이를 주목하게 마련이다.
모래 알갱이 같은 사소한 에러(error) 위에 세워진 기독교 교리, 그걸 디디고 서 있는 교회당, 반드시 무너져 내려 사라질 예정이다.
교회의 붕괴 소멸 과정이 이미 시작되어 상당히 진척되었음이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마치 암세포 자라나듯, Like a cancer grows.
교회의 쇠퇴는 영성때문이다, 목사때문이다, 물질만능주의 팽배이다 등등 여러 다양한 이유를 들고 나온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교회가 거짖말을 해야하는 이유 - 허접 교리 - 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