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 성전에서 기적 - 하나님을 찬미하니
사도행전 2, 3장을 읽어가면서 머릿속에 분명하게 자리잡는 게 있음을 깨닫게 된다.
어느 날 홀연히 구름속으로 야속하게 떠나간 예수, 그의 제자들 "활동 주무대는 아직도 성전" 사도행전 저자는 3장 전체를 일관한다.
요즘 기독교도들에게 유대인 성전 율법이란? 예수 죽음에 이르게 한 주범이다.
예수가 살아있을 때 그를 만지고 같이 호흡하고 먹고 마시고 논쟁했던 제자들과 추종자들, 성전 기도회 참석은 물론 예수가 수전절(修殿節)에 거닐며 사색에 잠겼던 솔로몬 행각에서의 집회 모습이 묘하게 그려진다.
예수 살아서 제자들과 추종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었다 - "바리새인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바리새인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therefore, do whatever they teach you and follow it; but do not do as they do, for they do not practice what they teach.마태복음 23장 3절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가 참석하려던 제 구시(오후 세시) 기도회는 율법에 없다 그러나, 바리새파가 지키는 구전율법(구전토라, Oral Torah)에 나와 있다. 랍비의 설명이다.
오후 성전 기도회에 참석하는 예수 제자들과 추종자들, 이들에게서 삼위일체를, 이신칭의를, 예수보혈 아니면 구원없다를 찾을텐가... 그럴 수 없음을 독자여러분이 모르기를 원치 아니한다.
예수와 제자들 그리고 추종자들은 바리새파의 구전율법(구전토라, Oral Torah)을 지키고 행하던 사람들이었다. 할례는 말할 것도 없고.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 성전들어갈 때 통과해야하는 문의 이름이 미문(美門, Beautiful Gate), 우리나라도 동문, 서문 남문 등등 무미건조한 東西南北 이름대신 이렇게 미적감각이 들어간 이름을 붙였으면 좋았을 걸...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아있던 앉은뱅이를 향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여 일으켜 세운다, 앉은뱅이는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 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한다.
기적 현상임에 틀림 없다.
이 현상을 본 누군가가, 태어날 때 부터 두다리가 남들과 달리 부자유스러운 사람을 향해 "님의 다리가 우리들 처럼 되세요!" 라고 말하여 그 즉시 그 말대로 이루어진다는 가정을 해보면, 글쎄 "기적을 평범한 선남선녀도 일으킬 수 있다는 가정" 그 자체가 글러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 바탕에, 그럴 능력이 내게 없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미 많은 기사와 표적을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감"이 있었을 만도 하다 - 사도행전 2장 43절
Awe came upon everyone, because many wonders and signs were being done by the apostles.사도행전 2장 43절
비록 시시콜콜 설명은 없었지만 사도들이 계속해서 많은 기사와 이적을 일으키고 있었다는 분명한 사도행전 기록이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대목은 기적 혹은 이적에 관한 정의(定義, Definition) - 상상을 뛰어넘는 어쩌다가 한번 일어날까 말까 하는 현상 - 이다.
사도행전 저자 말대로라면, 많은 이적, 즉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면 그건 이미 기적이 아니고 일상임을 사도행전 저자는 놓치고 있다.
기적을 거의 일상적으로 일으키던 제자들, 2절 앉은뱅이 일으킴 기적 행하기 앞서 갑자기 "예수 이름(6절)"을 의탁해서 팔을 잡아 이끌어 세웠다.
앉은뱅이 일으킴 기적 난이도가 행여 제자들 자신감에 상채기 내서였을까? 예수 이름의 갑작스러운 등판이 그런 의심을 자아내게 한다.
어찌되었든, 기독교도들 입장에서 보면, 예수 이름으로 기적이 일어났으니 아멘이다, 이제 예수광 허벌나게 팔아댈 예상이 뻔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어-라 이건 "예수 찬미" 예수광이 아니라, "하나님 찬미" 하나님광을 팔고있다, 사도행전 저자는.
그러면 예수는? 예수 이름으로 일어난 기적이건만... 예수때문이라고 기독교도들 스스로 자기확신에 몰입한다, 성경문자 Text가 그들의 눈에 들어 올 리가 없다.
사도행전 3장 어딜 봐도 "예수 찬미" 없다.
그래서 훗날 중간전달자, 중보자와 같은 아주 해괴한 장치 개발필요성이 성당 신부들 마음 속에 들어 간 걸까?
사도행전 3장은 이 사실을 웅변하고 있음을 너희가 모를기를 나는 원치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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